[수필] 바다로 가고 싶다
“짙은 녹색의 바다에 누워 하늘을 보면 하늘이 가볍게 나를 덮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바닷가에 서서 광대하게 펼쳐진 바다를 보고 있으면 내 삶을 힘들게 하는 그 어떤 문제도 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 시선을 멀리 던져도 그 끝은 하늘에 닿아 어디서부터 바다인지 알 수 없다. 시작을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파도는 거대한 몸짓으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 하늘을 향해 올랐다 바다 깊은 속으로 떨어지며 바다를 품고 하늘을 품고 그렇게 달려와 끝내는 내 발등에서 하얗게 부서지고 마는 파도. 그 앞에서 나의 고뇌는 한낱 작은 알갱이의 모래알이 되고 만다. 가슴을 옥죄던 상처는 소금물에 씻겨 이미 아물어 버리고 언제 그랬는지 기억마저 없다. 나를 비울 수 있는 곳, 나를 다시 채울 수 있는 곳, 그런 바다를 나는 참 좋아한다. 바다와의 깊은 만남을 위해 난 늘 한적한 때를 택했다. 사람들이 없고, 파라솔이 없고, 해수욕을 즐기는 인파의 아우성이 없는 바다. 인적이 끊어진 곳, 그것은 주로 겨울 바다였다. 때론 북극의 얼어붙은 하늘을 담고 달려온 찬 바람에 온몸이 얼어 와도, 온갖 것으로 몸을 칭칭 감고 난 바다 앞에 섰다. 그렇게 그 앞에 서서 바라만 보다 난 바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나가 보기로 했다. 그것은 거대한 빌딩이었다. 배 안으로 발을 딛는 순간 그 장엄함에 가슴이 뛰었다. 14층이나 되는 건물이 고급스러운 자태로 우뚝 솟아 있었다. 선실마다 직원이 배치되어 있어 우리가 선실을 비울 때마다 들어와 깨끗하게 정리해 주었다. 배의 맨 위층에는 수영장과 달리기를 할 수 있는 트랙이 있고 뱃머리 부분에 카페가 있었다. 간단한 아침식사와 음료가 제공되는 그곳은 푹신한 소파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바다를 향한 3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어디를 앉아도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통유리에 나 있는 문을 나서면 야외용 가구가 있고 거기서는 바닷바람과, 하늘에서 곧바로 쏟아지는 햇살을 만날 수 있었다. 함께간 가족들을 위한 식사를 직접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난 더 많은 시간을 혼자 즐길 수 있었다. 식사는 정찬식당이나 뷔페식당에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저녁식사만 가족과 함께 정찬식당에서 코스요리로 우아한 식사를 하고, 나머지는 각자가 좋아하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나는 주로 맨 위층에 있는 카페의 소파에서 시간을 보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그 장소에서 책을 읽다 음악을 듣다 잠시 오수를 즐기기도 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끝없이 바다만을 바라보며 누워 있기도 했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혼자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짙은 녹색의 바다에 누워 하늘을 보면 하늘이 가볍게 나를 덮었다. 남편의 학교를 따라 메릴랜드에 정착했던 우리는 그곳에서 시작한 사업으로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바쁜 도시 생활에 지친 우리는 큰아이가 대학에 갈 때쯤 작은 도시로 이사 갈 것을 계획했다. 일찍 은퇴하고 나머지 삶을 보다 보람 있는 것을 찾으며 보내자고 했다. 미국에서 주를 옮기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나라를 옮기는 것과도 같았다. 연방법을 따르는 것은 어느 주나 같지만 각 주마다 조금씩 다른 주법이 있었다. 메릴랜드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업에 성공하였던 우리는 지나친 자신감으로 그런 세부적인 것을 살피지 않았다. 전문적인 조사나 찬찬한 검열도 하지 않고 급하게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거기에 더하여 생각하지 못한 여러 사건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우리는 그동안 이민생활에서 쌓은 모든 재산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그리고 빚더미에 앉았다. 쉬어 가자고 택한 길이 오히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야 하는 고된 길이 되었다. 그런 삶을 10여년 살아내며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바다였다. 배를 타고 바다 가운데로 나가고 싶었다. 고된 노동에 지친 몸으로 난 날마다 바다를 그렸다. 잔잔한 바다 가운데 떠 있었던 그 순간을. 바다가 내가 되고 내가 바다가 되었던 그 순간을 떠올려 가슴에 담으며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 나갔다. 매일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조금만 여유 생기면 크루즈 가자고. 남편은 꼭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한 고비 한 고비 넘어가다 보니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이젠 크루즈로 한 일주일 여행을 해도 될 듯하여 남편에게 가자고 했다. 그가 아직은 안 된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운행을 안 하던 크루즈가 다시 시작했는데도 여전히 위험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배 안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모든 사람이 배에서 못 내리고 한동안 바다 위에 묶여 있기도 했다. 어서 코로나의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날이 오자마자 그 큰 배를 타고 바다로 갈 것이다. 그 배가 가는 곳이 카리브해든 알래스카든 상관없다. 어디든 바다로 갈 테니. 난 그저 바다 한가운데로 가고 싶다. 그 바다에 눕고 싶다. 하늘을 덮고 싶다. 허경옥 / 수필가수필 바다 한동안 바다 바다 한가운데 바닷바람과 하늘